2020년 4월 24일

자민

출처: 자민의 브런치 - 인생은 육십부터

인생은 육십부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엄마를 응원하며

엄마가 방에서 도통 나오질 않는다. 때아닌 '인강'을 듣느라 열심이다. 저린 다리 한쪽을 주물러가며 몇 시간째 책상에 앉아 계신다.

코로나19 때문에 입학식도 채 못 치렀다며 아쉬움을 삼키던 때도 벌써 두어 달 전이다. 처음에는 컴퓨터 켜는 것도 어색해하시던 분이 이제는 보고 싶은 강의를 스스로 켜서 듣고 있다. "아무리 들어도 하~나도 모르겠다야."라고 엄살을 부리시지만, 언뜻 어깨너머로 진도를 보니 각 과목별로 다 한 번씩은 돌려보신 것 같다.

나이 예순을 훌쩍 넘어 20학번 새내기 대학생이 된 엄마는 지금 오롯이 자신의 공부에 정진하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인 말마따나 '눈에 불을 켜고.'

사회적 거리두기 시국에도 해는 어김없이 뜨고 진다. 엄마가 재학 중인 방송통신대에서도 어느덧 중간 과제물이 나왔다. 태어나서 처음 대학교 리포트를 써야 하는 엄마는 걱정이 태산 같아서였는지 중간고사 시기임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던 아들에게 SOS를 쳤다. 대학 신입생들이 으레 듣기 마련인 <글쓰기> 강의였다. '내 인생의 통과의례'라는 주제로 두어 장 정도의 짧은 에세이를 써내는 것이 과제란다.

주제는 뭘로 하실 거예요? 물었더니 이미 정해놓았단다. '검정고시'라고.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나니 2월이었다. 넋 놓고 그저 멍하니 소파에 앉아만 있던 엄마를 보고 있다 중학교 검정고시 교재를 주문했다. 하루 종일 아버지 병간호 안 해도 되니 이제 엄마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시라는 말을 덧붙이며.

사실 꼭 검정고시 책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엄마가 마음 붙일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좋았다. 그저 뭐라도 붙잡고 있다 보면 떠난 남편 생각을 덜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우연히 그 순간에 엄마가 항상 초등학교까지밖에 마치지 못했던 것을 한스러워하던 게 떠올랐을 뿐.

‘내 인생의 통과의례’: ‘검정고시’

‘내 인생의 통과의례’: ‘검정고시’

엄마는 생각 이상으로 열심이었다. (비록 재수 턱걸이였지만) 그해 바로 중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그다음 해에는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한 해를 넘겨 최종 합격했다. 만 2년 만에 중고교 과정을 마친 엄마는 올해 봄,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다. 입시요강을 보며 지원학과를 고민하는 엄마에게 무슨 과로 최종 지원하실 것이냐고 물어봤을 때 엄마는 결연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말했다. "법대 갈란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자고로 학과는 본인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여전히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엄마는 교양과목 글쓰기 수업 리포트를 노트에 손으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본인 인생에서 가장 길게 써본 글이었을 것이다. 소녀처럼 부끄러워하며 어떤지 한 번 봐 달라고 내민 노트에 쓰여 있는 글을 읽어 내려가다 순간 먹먹해졌다. 자기 스스로 쓰는 자신의 인생은 뭔가 다른 힘이 있구나. 글 속에는 한 번도 알 길 없었던 엄마의 오랜 기억 속 세상이 살포시 그려져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오산에 있는 가발공장에 일하러 갔다. 친구들이 부러웠다. 책가방 들고 가는 친구들을 길에서 만나면 만져 보기도 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 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장에서 일을 했다. 친구들은 정년퇴임을 할 때, 나는 내 나이 63살에 방통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공장 나가는 길에 책가방을 들고 중학교에 가던 동기들을 마주치곤 못내 부러워하던 열네 살 소녀가 글 속에서 숨 쉬고 있었다. 직접 글로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엄마의 마음속 한 장면을 함께 들여다본 셈이 되었다. 늦게나마 엄마가 이렇게 본인의 육십 년 인생을 자기 목소리로, 자기 글로 재구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에 감사했다. ‘꿈에 그리던’ 엄마의 대학 공부가 제 몫을 하긴 하는구나 싶었다.

어릴 적 툭하면 졸기 일쑤였던 나와 동생에게 엄마는 ‘지금 잠이 오냐? 나라면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겠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렇게 말은 씨가 되었고, 엄마는 환갑을 지나 정말 늦게까지 불을 켜놓고 몰입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힘들다 어렵다 괜히 시작했다 이번 학기만 지나면 다 때려치우고 동네 아줌마들이랑 같이 놀러 다닐 거다라고 매일같이 푸념하고 있지만, 그게 다 엄살이라는 것쯤은 안다. 검정고시를 시작한 이후 벌써 세 해가 지났는데 가족들이라고 모를 리가.

아빠는 옆에 없지만, 엄마는 지금 멋진 60대를 맞고 있다. 인생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의 보호자로만 살아온 엄마가 난생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뭐든 죽기 살기로 하는 양반인 만큼, 남은 사 년 대학생활도 잘 해내실 거다. 나 역시, 엄마의 찬란할 학창시절을 뒷바라지할 마음의 준비가 됐다.

그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